총액인건비제도 탓에 초과근로수당도 제대로 못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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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전국금융사무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금융노조 위원장 겸직)이 2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오는 27일 총파업에 대한 배경과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배태호 기자 |
"사실 기업은행 직원들은 이런 상황이면 민영화시켜달라는 요구까지 분출되는 상황입니다. 다만 평상시 업무는 시중은행과 동일하다고 해도, (코로나19 등) 국가 위기 상황이 오면 사실상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한 모든 자금 공급 활동을 기업은행이 전담해서 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국책은행으로서) 책임감이 있습니다"
김형선 전국금융사무노조(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정부 총액인건비제도로 인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은 물론 지방은행보다 낮은 임금과 1인당 수백만원의 초과근로 수당도 못 받은 IBK기업은행 근로자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은행 노조가 전국 모든 영업점을 사실상 '셧다운'하고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근처 기업은행 본점에서 총파업 집회 뒤 광화문 서울 정부청사까지 가두시위에 나선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자체적으로 총파업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4일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오는 27일 하루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앞서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12일 조합원 88%가 참여한 쟁의 행위 찬반 투표에서 압도적인 95%(6241명) 찬성으로 총파업을 결의한 바 있다.
기업은행이 '사상 첫' 총파업에 나선 배경은 임금 인상은 물론 초과근로수당까지 가로막는 정부의 총액임금제 탓이다.
총액인건비제도는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1년에 사용할 인건비 총액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인건비를 집행하는 제도다. 직원 급여는 물론 정기상여금, 명절휴가비, 복지포인트 등 직원에게 지급되는 모든 비용이 포함된다.
중앙행정기관은 물론 국립대학, 책임운영기관은 물론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지정하는 공공기관이 적용 대상인데,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공공기관에 포함돼 총액인건비제도 적용을 받는다.
총액인건비제도는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 경영 자율화를 통해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7년 도입됐고, 이에 대한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통제한다.
다만 개별 기관 특성을 살피지 않고 공공기관이란 기준 하나로 인건비 총액을 통제하다 보니, 경영 성과를 내더라도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기 않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실제 기업은행은 △2021년 2조4000억원 △2022년 2조8000억원 △2023년 2조7000억원이란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기간 임금인상률은 △2021년 0.9% △2022년 1.4% △2023년 1.7%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6%인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임금이 쪼그라든 셈이다.
여기에 KB국민은행 등 시중은행 임금 평균 상승률이 △2021년 2.4% △2022년 3.0% △2023년 2.0% 수준인 것과 비교해도 각각 -1.5%포인트(p), -1.6%p, -0.3%p 낮았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말 기준 4대 시중은행 평균 임금(1억1600만원)과 비교해 기업은행은 3100만원 적은 8500만원 정도로 30%가량 적었다.
여기에 총액임금제로 인해 야근 등을 해도 받지 못한 시간외 수당도 780억원에 달한다. 이는 직원 1인당 약 600만원 가량 수당을 받지 못해 체불임금이 쌓였다는 뜻이다.
특히 국책은행이지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은행의 경우 기획재정부가 약 60%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기재부는 기업은행 이익에 대해 배당금을 받는데, △2021년 2208억원 △2022년 4555억원 △2023년 4668억원을 챙겼다.
이는 기업은행 당기순익 중 △2021년 9.2% △2022년 16.3% △2023년 17.3%를 정부 곳간 채우기에 썼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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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선 위원장(사진 중앙) 등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가 27일 총파업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배태호 기자 |
반면 이 기간 기업은행이 근로자에게 초과이익에 대한 성과급으로 지급한 돈은 한 푼도 없다.
기업은행 노조는 임금차별과 체불문제가 고착화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벌였지만, 사측은 기재부 핑계를 대며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결국 총파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 겸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정부부처 역시 기업은행의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며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절차 과정에서 '보상휴가 적체는 기업은행 이익 규모를 봤을 때 큰 문제'라고 했고, 기업은행 실태를 조사간 근로감독관도 '시간외수당 적체 문제에 관한 해결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고 강조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현재 상황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는 총액인건비제로 규정하고, 총파업 뒤 정부 서울청사까지 가두행진을 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기재부가 이에 대해 충분한 해법을 내놓지 않을 경우 전체 공공기관과 연대해 추가로 총파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실제 한국은행 노조도 성명을 통해 기업은행 노조의 파업 투쟁에 연대할 것을 선언했고,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노조 역시 쟁의행위에 나설 수 있다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공공부문 노조가 결성한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역시 "기업은행 단독 총파업의 원흉은 기재부 총액인건비제도"라며 "반헌법적·반인권적 총액인건비제도를 즉각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민간 은행 대신 국책은행을 선택했는데, 직원들 상당수가 (총액인건비제로 인해 처우 개선이 안되다 보니) '차라리 민영화를 해라'라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며 "시중은행과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국책은행으로서 역할도 해야 하는 기업은행의 고충을 토로하는 직원이 많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총파업 당일인 27일 기업은행 전 점포는 평소와 같이 문을 열게 된다. 다만, 조합원이 아닌 지점장과 팀장 2~3명을 제외한 대부분 직원이 총파업에 참여하면서 창구 업무 대부분은 사실상 처리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CWN 배태호 기자
bth@cw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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