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테크 매체 애플인사이더가 1월 19일(현지 시각), 애플 리사(Apple Lisa)가 탄생 40주년을 맞이한 소식을 보도했다.
애플 리사는 1978년 개발 작업 시작 후 1983년 1월 19일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리사는 미래의 맥, 아이맥, 아이폰 6, 애플워치가 베일을 벗은 곳이자 2019년 영구 폐쇄된 곳인 플린트 센터(Flint Center)에서 공개됐다.
당시 애플은 리사 출시를 계획하면서 비즈니스 사용자를 겨냥한 비즈니스 컴퓨터 출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애플은 리사 제작 시 Xerox의 GUI 기반 컴퓨터 Alto의 기술을 차용했다.
데이비드 T. 크레이그(David T. Craig)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추진할 애플 리사 마케팅 계획을 작성해 애플 경영진의 승인을 받았다. 크레이그는 마케팅 계획에 "1983년 1월 19일은 리사의 시장 출시를 위한 오랜 개발을 종료한 날이자 개인 컴퓨팅 개발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한 날이다. 연례 주주총회와 애플 사업을 운영 중인 다른 여러 국가에서 리사를 동시 공개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작성됐다. 다만, 리사 전 세계 동시 공개 및 주주총회 관련 사항은 명시되지 않았다.
리사는 일주일 후인 1983년 1월 26일 자로 시연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당시 리사 시연 관련 사항도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잡스는 한때 리사 개발의 핵심 인력이었으며, '리사'라는 이름은 잡스의 딸의 이름을 따라 정해진 것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가 리사의 일부 프로모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잡스는 과거 리사 시연 현장을 담은 영상 속에서 "리사는 애플이 그동안 시도한 것 중 가장 야심 찬 기술적 사업 계획이다. 애플 II 개발 이후 최대 규모로 인적 자원에 투자한 프로젝트이며, 위험성이 크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잡스는 리사 시연 당시 이미 리사 프로젝트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잡스는 1982년에 리사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그는 매킨토시 크리에이터 제프 라스킨(Jef Raskin)에게서 프로젝트를 넘겨받았다.
한편, 리사는 비즈니스 사용자를 겨냥해 1만 달러에 육박하는 가격에 출시됐으나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비싼 가격에 소프트웨어와 플로피 디스크 문제 때문에 2년 뒤 리사 2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출시된 매킨토시가 리사의 자리를 대거 대체했다. 리사의 실패로 애플의 사업에 타격이 이어졌지만, 애플의 존립 위기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잡스는 1985년, 플레이보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사실, 모두가 애플의 파산을 예상했던 1983년은 애플이 성공을 거둔 해였다"라며, "실질적으로 애플의 가치는 2배 증가했다. 1982년, 애플의 가치는 5억 8,300만 달러였다. 그리고 이듬해 기업 가치는 9억 8,000만 달러에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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