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론' 첫 언급, 사실상 인정…"극복할 기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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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관련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다시 한번 제 자신과 회사 경영을 되돌아 보고 성찰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며 많은 시간 자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아온 지난 시간을 자책하며 보냈다. 삼성과 자신을 향한 비판과 격려, 걱정과 응원을 접하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다는 게 그의 토로다. 기대 만큼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다. 회사의 생존과 성장을 넘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 회장은 지난 25일 서울고법 형사13부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소명(召命)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 회장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2월 1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곳곳의 여러 사업가들과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국내외 현장에서 뛰고 있는 여러 임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삼성의 미래를 고민했던 그다. 삼성을 둘러싼 '위기론'에 대해서도 극복 의지를 드러냈다. 이 회장은 "최근 들어서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저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녹록치 않지만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삼성 위기론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위기론을 사실상 인정하고 경영 정상화를 이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삼성의 쇄신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이 회장이 말한 '소명'이 강조된다. 당장 안팎에선 인사 칼바람을 예상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정기 인사에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DS부문의 경우 일부 사업부장의 교체 가능성이 거론된다. 삼성은 여러모로 긴장된 분위기다. 이날 검찰은 이 회장에게 1심과 같은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기업가로서 생존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 왔고, 합병 사건도 마찬가지"라며 "합병 추진을 보고받고 두 회사의 미래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주주들께 피해를 입힌다거나 투자자들을 속인다든가 하는 그런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책임을 물어야 할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평생 회사를 위해 헌신해 온 다른 피고인들을 선처해 달라"고 부탁했다.
검찰은 이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출신 최지성 전 실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에 대해서도 1심과 동일하게 각각 징역 4년6개월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또 장충기 전 차장에겐 징역 3년과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진다면 지배주주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위법과 편법을 동원해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 사건 판결은 앞으로 재벌기업 구조 개편과 회계처리 방향에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엄중 처벌을 강조했다. 이 회장 등 항소심 선고 공판은 내년 2월 3일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은 "최후진술을 준비하면서 1심 판결을 선고받던 때가 떠올랐다. 3년이 넘는 오랜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사실 안도감 보다는 훨씬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 부디 저의 소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CWN 소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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